레바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가족들이 과밀한 대피소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공습을 피해 아이들과 함께 탈출한 한 어머니의 간절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베이루트, 2026년 3월 – 28세 여성 사하라(Sahara) 씨에게 어느 날 아침의 첫 햇살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레바논 남부에 천둥 같은 공습이 휘몰아치던 그때, 그녀는 아들 카림(Karim)을 품에 꼭 안고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그 탈출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사하라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회상했습니다. "두 아들 아흐마드와 카림은 자고 있었고, 남편과 저는 막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죠. 갑자기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어요. 우리 동네 근처까지 강제 대피 명령이 내려진 거예요. 너무 당황해서 온몸이 떨렸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이 겁먹지 않도록 차분하게 깨웠고, 저는 정신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짐을 챙겨 아이들을 데리고 달렸어요. 멀리서 들려오는 공습 소리에 마치 하늘이 우리 뒤로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가족은 베이루트 외곽의 산악 지역으로 향했지만, 이미 공습을 피해 온 사람들로 집집마다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정착한 곳은 대피소로 개조된 어느 공공 학교였습니다.

(사진 설명) 2026년 3월 5일, 베이루트에서 남쪽으로 34km 떨어진 슈프(Chouf) 지구 마운트 레바논(Mount Lebanon) 주. 대피소로 개조된 공공 학교 교실에서 28세의 레바논 이재민 여성 사하라 씨가 가족들과 함께 머물고 있다. ©Medair/Abdul Dennaoui
"학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습니다. "친척 24명이 교실 세 개에 나뉘어 다닥다닥 붙어 지냅니다. 바닥에서 잠을 자고, 사생활은 전혀 없죠.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뿐이에요. 저축해둔 돈도 조금 있고 학교 측의 도움도 받지만, 제가 바라는 건 오직 우리 가족이 다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집' 하나뿐입니다. 우리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어요. 매일 밤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집과 가족을 지켜주세요'라고요. 탈출할 때 차 안에서 겁에 질려 떨던 막내 카림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사진 설명) 2026년 3월 5일, 베이루트 남쪽 34km 지점 슈프 지구의 공공 학교 대피소. 28세의 사하라 씨가 4살 된 아들 카림을 품에 안고 교실에 앉아 있다. ©Medair/Abdul Dennaoui
카림이 전쟁의 공포를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24년, 또 다른 공습 상황에서 피난을 가던 중 카림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포탄 파편이 우리 차를 덮쳐 창문이 박살 났어요." 그녀가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카림의 이마가 깊게 찢어져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였죠. 남편은 아이를 낚아채듯 안고 근처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몸의 상처는 나았지만, 그 후로 아이는 말을 잘 못 하게 됐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어요. 조금씩, 우리는 아이에게 다시 걷는 법과 말하는 법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우리 삶은 치료와 병원 방문, 그리고 쉼 없는 간병의 연속이 되었죠. 그런데 이제… 또다시 전쟁입니다. 아이는 다시 공포에 질렸어요. 이 상황이 아이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어떤 상처를 남길지 너무나 두렵습니다."
지난 3월 2일부터 시작된 레바논의 이번 사태로 연이은 공습이 이어지면서 어린이 98명을 포함해 687명이 목숨을 잃었고, 304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대규모 이재민이 발생해 5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었으며, 그중 12만 명 이상은 현재 대피소로 개조된 600여 개의 공공 학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피소가 문을 열자마자 메데어는 카림의 가족처럼 안전을 찾는 이들을 돕기 위해 즉시 팀을 현장에 급파했습니다. 사하라 씨 가족은 담요와 매트리스 등 생필품을 지원받아, 대피소 생활 중에도 최소한의 안위와 존엄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키롤로스 파레스(Kirollos Fares) 메데어 레바논 국가 사무국장은 상황의 시급성을 강조했습니다. "사태가 발생한 지 단 닷새 만에 전례 없는 강제 대피령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제대로 된 준비도 못한 채 짧은 통보만 받고 떠나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얼마나 오래 집을 떠나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메데어는 현재 베이루트, 마운트 레바논, 베카 계곡, 그리고 남부 지역에서 긴급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구호 활동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사태 초기부터 메데어 팀은 대피소 상황을 점검하고, 27,343명에게 매트리스와 담요 등 85,000점 이상의 구호 물품을 전달했습니다. 또한 이동 진료소를 통해 이재민들을 진료하고, 지역 보건 자원봉사자와 조산사들에게 '심리적 응급처치(Psychological First Aid)' 교육을 실시해 심리적 지원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대피소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활동들은 이재민들의 극심한 고통을 줄이고,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고위험군을 안전하게 연계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하라 씨가 말했습니다. "덕분에 아주 조금의 희망과 힘을 얻었어요. 하지만 이 상황이 끝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두렵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저 안정된 삶, 공포와 고통 없는 평범한 일상뿐입니다."
빈손으로 피난길에 올랐던 사하라 씨 가족은 대피소에서 매트리스, 담요, 취침용 매트, 태양광 램프 등을 지원받았습니다. 이러한 물품들은 단순히 생활의 편의를 넘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이 다시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는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 줌으로써 그들의 존엄성을 되찾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누군가의 집이 되어주세요.
*메데어의 레바논 구호 활동은 유엔난민기구(UNHCR), 미국 국무부, 스위스 개발협력청(Interaction-CH), 레바논 인도주의 기금(OCHA), 독일 연방 외무부, 모나코 협력국, 그르노블 알프스 메트로폴, 론-지중해-코르시카 수자원 공사 및 개인 후원자들의 소중한 후원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콘텐츠는 메데어 현장 및 본부 직원들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표현된 견해는 메데어의 단독 입장이며, 다른 기관의 공식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베이루트, 2026년 3월 – 28세 여성 사하라(Sahara) 씨에게 어느 날 아침의 첫 햇살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레바논 남부에 천둥 같은 공습이 휘몰아치던 그때, 그녀는 아들 카림(Karim)을 품에 꼭 안고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그 탈출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사하라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회상했습니다. "두 아들 아흐마드와 카림은 자고 있었고, 남편과 저는 막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죠. 갑자기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어요. 우리 동네 근처까지 강제 대피 명령이 내려진 거예요. 너무 당황해서 온몸이 떨렸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이 겁먹지 않도록 차분하게 깨웠고, 저는 정신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짐을 챙겨 아이들을 데리고 달렸어요. 멀리서 들려오는 공습 소리에 마치 하늘이 우리 뒤로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가족은 베이루트 외곽의 산악 지역으로 향했지만, 이미 공습을 피해 온 사람들로 집집마다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정착한 곳은 대피소로 개조된 어느 공공 학교였습니다.
(사진 설명) 2026년 3월 5일, 베이루트에서 남쪽으로 34km 떨어진 슈프(Chouf) 지구 마운트 레바논(Mount Lebanon) 주. 대피소로 개조된 공공 학교 교실에서 28세의 레바논 이재민 여성 사하라 씨가 가족들과 함께 머물고 있다. ©Medair/Abdul Dennaoui
"학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요." 그녀가 말을 이었습니다. "친척 24명이 교실 세 개에 나뉘어 다닥다닥 붙어 지냅니다. 바닥에서 잠을 자고, 사생활은 전혀 없죠.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뿐이에요. 저축해둔 돈도 조금 있고 학교 측의 도움도 받지만, 제가 바라는 건 오직 우리 가족이 다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집' 하나뿐입니다. 우리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어요. 매일 밤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집과 가족을 지켜주세요'라고요. 탈출할 때 차 안에서 겁에 질려 떨던 막내 카림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사진 설명) 2026년 3월 5일, 베이루트 남쪽 34km 지점 슈프 지구의 공공 학교 대피소. 28세의 사하라 씨가 4살 된 아들 카림을 품에 안고 교실에 앉아 있다. ©Medair/Abdul Dennaoui
카림이 전쟁의 공포를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24년, 또 다른 공습 상황에서 피난을 가던 중 카림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포탄 파편이 우리 차를 덮쳐 창문이 박살 났어요." 그녀가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카림의 이마가 깊게 찢어져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였죠. 남편은 아이를 낚아채듯 안고 근처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몸의 상처는 나았지만, 그 후로 아이는 말을 잘 못 하게 됐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어요. 조금씩, 우리는 아이에게 다시 걷는 법과 말하는 법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우리 삶은 치료와 병원 방문, 그리고 쉼 없는 간병의 연속이 되었죠. 그런데 이제… 또다시 전쟁입니다. 아이는 다시 공포에 질렸어요. 이 상황이 아이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어떤 상처를 남길지 너무나 두렵습니다."
지난 3월 2일부터 시작된 레바논의 이번 사태로 연이은 공습이 이어지면서 어린이 98명을 포함해 687명이 목숨을 잃었고, 304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대규모 이재민이 발생해 5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었으며, 그중 12만 명 이상은 현재 대피소로 개조된 600여 개의 공공 학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피소가 문을 열자마자 메데어는 카림의 가족처럼 안전을 찾는 이들을 돕기 위해 즉시 팀을 현장에 급파했습니다. 사하라 씨 가족은 담요와 매트리스 등 생필품을 지원받아, 대피소 생활 중에도 최소한의 안위와 존엄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키롤로스 파레스(Kirollos Fares) 메데어 레바논 국가 사무국장은 상황의 시급성을 강조했습니다. "사태가 발생한 지 단 닷새 만에 전례 없는 강제 대피령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제대로 된 준비도 못한 채 짧은 통보만 받고 떠나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얼마나 오래 집을 떠나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메데어는 현재 베이루트, 마운트 레바논, 베카 계곡, 그리고 남부 지역에서 긴급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구호 활동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사태 초기부터 메데어 팀은 대피소 상황을 점검하고, 27,343명에게 매트리스와 담요 등 85,000점 이상의 구호 물품을 전달했습니다. 또한 이동 진료소를 통해 이재민들을 진료하고, 지역 보건 자원봉사자와 조산사들에게 '심리적 응급처치(Psychological First Aid)' 교육을 실시해 심리적 지원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대피소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활동들은 이재민들의 극심한 고통을 줄이고,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고위험군을 안전하게 연계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하라 씨가 말했습니다. "덕분에 아주 조금의 희망과 힘을 얻었어요. 하지만 이 상황이 끝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두렵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저 안정된 삶, 공포와 고통 없는 평범한 일상뿐입니다."
빈손으로 피난길에 올랐던 사하라 씨 가족은 대피소에서 매트리스, 담요, 취침용 매트, 태양광 램프 등을 지원받았습니다. 이러한 물품들은 단순히 생활의 편의를 넘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이 다시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는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 줌으로써 그들의 존엄성을 되찾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누군가의 집이 되어주세요.
*메데어의 레바논 구호 활동은 유엔난민기구(UNHCR), 미국 국무부, 스위스 개발협력청(Interaction-CH), 레바논 인도주의 기금(OCHA), 독일 연방 외무부, 모나코 협력국, 그르노블 알프스 메트로폴, 론-지중해-코르시카 수자원 공사 및 개인 후원자들의 소중한 후원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콘텐츠는 메데어 현장 및 본부 직원들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표현된 견해는 메데어의 단독 입장이며, 다른 기관의 공식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