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어는 레바논의 수용 한계를 초과한 공립학교 집단 대피소 62곳을 개보수하여, 1만 1천 명 이상의 실향민과 난민들에게 튼튼한 칸막이와 문이 있는 안전하고 존엄한 사생활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칼레드와 그의 가족은 집단 대피소로 바뀐 공립학교에서 붐비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밤에 문을 잠그고 열쇠로 잠글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입니다.” 국내 실향민인 아버지 칼레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56세의 칼레드는 레바논 남부 출신으로, 그곳에서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삶을 꾸려왔습니다. 오랜 세월 그의 집은 안정의 공간이었고, 일상은 예측 가능하고 평온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평범한 일상은 불확실함으로 바뀌었고, 그는 가족과 함께 국내 실향민으로서의 삶을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이 학교 책상에 앉아 있으면 제 학창 시절이 떠오릅니다. 조용히 앉아서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그때 말이죠. 그때의 기다림은 단순했고, 기대로 가득했습니다. 지금도 같은 종류의 책상에 앉아 있지만, 이번엔 수업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가족과 함께 이 교실이 우리만의 생활공간으로 바뀌기를, 우리만의 공간과 사생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기다림입니다. 불확실함으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머지않아 문을 닫고 이곳을 우리 집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담겨 있습니다.”
강제 대피 명령이 칼레드의 휴대폰으로 전해졌을 때,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그와 아내는 두 아이를 데리고 오직 한 가지,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는 일에만 집중하며 공포 속에서 움직였습니다. “저희는 즉시 두 아이와 함께 피난을 떠났고, 마운트 레바논 지역의 한 공립학교에서 몸을 피했습니다. 그 학교는 이미 집단 대피소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전을 찾은 대신 새로운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 학교는 이미 포화 상태였고, 갑작스레 집을 떠나야 했던 다른 가족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칼레드의 가족은 네 명으로 이루어진 다른 가족과 함께 교실 한 칸을 배정받았습니다.
“벽도 문도 없이, 서로 모르는 여덟 명이 하나의 열린 공간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의 생활은 끊임없는 부담이었습니다. 옷을 갈아입을 사생활도, 쉴 수 있는 조용한 공간도 없었고, 가족 간의 구분도 전혀 없었습니다. 특히 밤에는 더욱 힘들었는데, 잠을 자다가도 자꾸 깨어났고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피로는 몸과 마음 모두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두 가족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었음에도, 공간의 부족은 매일의 삶을 힘겹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든 경계를 만들어보고자 칼레드와 다른 가족의 가장은 임시방편을 마련했습니다. “저희는 파란색 비닐 시트를 교실 이쪽에서 저쪽까지 밧줄로 묶어 걸어놓았습니다. 허술하고 소리도 전혀 막지 못했지만, 그것이 저희가 가진 유일한 해결책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았습니다.”

(사진 설명) 임시 비닐 칸막이로 나뉜 교실 내부, 마운트 레바논의 한 공립학교가 집단 대피소로 사용되고 있다. 2026년 4월 15일 촬영. ⓒMedair/Abdul Dennaoui
칼레드의 경험은 레바논 전역의 수많은 실향민 가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공립학교를 개조한 집단 대피소들은 대개 수용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입니다. 과밀, 부족한 사생활, 열악한 시설 인프라는 일상을 더욱 힘겹게 만들고, 실향의 불확실함은 가족들에게 계속해서 무거운 짐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교실 밖에 앉아서 메데어 팀이 제대로 된 칸막이와 문을 설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각 가족이 마침내 자기만의 공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 개선은 단순하지만, 그 영향은 매우 깊습니다.
UNHCR과 여러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아 메데어가 진행한 이 사업을 통해, 저희 팀은 베카와 마운트 레바논 지역의 70여 개 집단 대피소에서 기술 평가를 실시했고, 그 가운데 62곳이 시급한 개보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대피소들은 현재 전쟁으로 실향한 레바논인 가족과 시리아 난민을 포함해 1만 1천 명 이상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대피소에서 개보수 작업이 완료되었고, 다른 곳들에서도 작업이 계속 진행 중입니다. 이를 통해 생활 여건이 개선되고, 사생활이 회복되며, 피난처를 찾는 가족들에게 더 안전하고 존엄한 공간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사진 설명) 마운트 레바논의 한 공립학교가 집단 대피소로 쓰이는 가운데, 메데어의 필수 개보수 작업으로 칸막이 설치가 진행 중인 교실. 2026년 4월 15일 촬영. ⓒMedair/Abdul Dennaoui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에는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남부에 있는, 그 운명조차 알 수 없는 우리 집을 결코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존엄성을 줍니다. 밤에 문을 잠그고 열쇠로 잠글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입니다.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 저희에게는 그것이 사생활이자 안전이며, 다시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칼레드의 이야기는 실향을 겪으며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 불확실함 속에서도 존엄성을 지켜나가고 있는 수많은 가족들의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당신의 손길이 닫히지 않았던 문에 자물쇠를 달아줍니다.
*메데어의 레바논 활동은 유엔난민기구(UNHCR), Interaction-CH를 통한 스위스개발협력청, 독일연방외무부, 미국 국무부, 모나코 개발협력청, 그르노블 광역시, 그리고 여러 개인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가능합니다.
*본 콘텐츠는 메데어 현장 및 본부 직원들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담긴 견해는 전적으로 메데어의 것이며, 다른 어떤 기관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됩니다.
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칼레드와 그의 가족은 집단 대피소로 바뀐 공립학교에서 붐비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밤에 문을 잠그고 열쇠로 잠글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입니다.” 국내 실향민인 아버지 칼레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56세의 칼레드는 레바논 남부 출신으로, 그곳에서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삶을 꾸려왔습니다. 오랜 세월 그의 집은 안정의 공간이었고, 일상은 예측 가능하고 평온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평범한 일상은 불확실함으로 바뀌었고, 그는 가족과 함께 국내 실향민으로서의 삶을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이 학교 책상에 앉아 있으면 제 학창 시절이 떠오릅니다. 조용히 앉아서 수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그때 말이죠. 그때의 기다림은 단순했고, 기대로 가득했습니다. 지금도 같은 종류의 책상에 앉아 있지만, 이번엔 수업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가족과 함께 이 교실이 우리만의 생활공간으로 바뀌기를, 우리만의 공간과 사생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기다림입니다. 불확실함으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머지않아 문을 닫고 이곳을 우리 집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담겨 있습니다.”
강제 대피 명령이 칼레드의 휴대폰으로 전해졌을 때,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그와 아내는 두 아이를 데리고 오직 한 가지,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는 일에만 집중하며 공포 속에서 움직였습니다. “저희는 즉시 두 아이와 함께 피난을 떠났고, 마운트 레바논 지역의 한 공립학교에서 몸을 피했습니다. 그 학교는 이미 집단 대피소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전을 찾은 대신 새로운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 학교는 이미 포화 상태였고, 갑작스레 집을 떠나야 했던 다른 가족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칼레드의 가족은 네 명으로 이루어진 다른 가족과 함께 교실 한 칸을 배정받았습니다.
“벽도 문도 없이, 서로 모르는 여덟 명이 하나의 열린 공간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의 생활은 끊임없는 부담이었습니다. 옷을 갈아입을 사생활도, 쉴 수 있는 조용한 공간도 없었고, 가족 간의 구분도 전혀 없었습니다. 특히 밤에는 더욱 힘들었는데, 잠을 자다가도 자꾸 깨어났고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피로는 몸과 마음 모두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두 가족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었음에도, 공간의 부족은 매일의 삶을 힘겹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든 경계를 만들어보고자 칼레드와 다른 가족의 가장은 임시방편을 마련했습니다. “저희는 파란색 비닐 시트를 교실 이쪽에서 저쪽까지 밧줄로 묶어 걸어놓았습니다. 허술하고 소리도 전혀 막지 못했지만, 그것이 저희가 가진 유일한 해결책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았습니다.”
(사진 설명) 임시 비닐 칸막이로 나뉜 교실 내부, 마운트 레바논의 한 공립학교가 집단 대피소로 사용되고 있다. 2026년 4월 15일 촬영. ⓒMedair/Abdul Dennaoui
칼레드의 경험은 레바논 전역의 수많은 실향민 가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공립학교를 개조한 집단 대피소들은 대개 수용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입니다. 과밀, 부족한 사생활, 열악한 시설 인프라는 일상을 더욱 힘겹게 만들고, 실향의 불확실함은 가족들에게 계속해서 무거운 짐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교실 밖에 앉아서 메데어 팀이 제대로 된 칸막이와 문을 설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각 가족이 마침내 자기만의 공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 개선은 단순하지만, 그 영향은 매우 깊습니다.
UNHCR과 여러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아 메데어가 진행한 이 사업을 통해, 저희 팀은 베카와 마운트 레바논 지역의 70여 개 집단 대피소에서 기술 평가를 실시했고, 그 가운데 62곳이 시급한 개보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대피소들은 현재 전쟁으로 실향한 레바논인 가족과 시리아 난민을 포함해 1만 1천 명 이상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대피소에서 개보수 작업이 완료되었고, 다른 곳들에서도 작업이 계속 진행 중입니다. 이를 통해 생활 여건이 개선되고, 사생활이 회복되며, 피난처를 찾는 가족들에게 더 안전하고 존엄한 공간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사진 설명) 마운트 레바논의 한 공립학교가 집단 대피소로 쓰이는 가운데, 메데어의 필수 개보수 작업으로 칸막이 설치가 진행 중인 교실. 2026년 4월 15일 촬영. ⓒMedair/Abdul Dennaoui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에는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남부에 있는, 그 운명조차 알 수 없는 우리 집을 결코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존엄성을 줍니다. 밤에 문을 잠그고 열쇠로 잠글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입니다.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 저희에게는 그것이 사생활이자 안전이며, 다시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칼레드의 이야기는 실향을 겪으며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 불확실함 속에서도 존엄성을 지켜나가고 있는 수많은 가족들의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당신의 손길이 닫히지 않았던 문에 자물쇠를 달아줍니다.
*메데어의 레바논 활동은 유엔난민기구(UNHCR), Interaction-CH를 통한 스위스개발협력청, 독일연방외무부, 미국 국무부, 모나코 개발협력청, 그르노블 광역시, 그리고 여러 개인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가능합니다.
*본 콘텐츠는 메데어 현장 및 본부 직원들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담긴 견해는 전적으로 메데어의 것이며, 다른 어떤 기관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