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메데어 대표 앤 라이체마가 다니엘기도회의 강연자로 초청받아 수만 명의 한국인 앞에 섰습니다. 그녀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누었던 구호 현장에서의 긴박한 위기 상황과, 그 길 끝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간 이야기. 생생한 후기를 지금 바로 전해드립니다!
2023년 11월 13일, 메데어 대표 앤 라이체마가 다니엘기도회에 참석하여 수만 명의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통역으로는 메데어 코리아의 배고은 사무국장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날, 앤 대표의 강연을 듣기 위해 현장에는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으며, 실시간 영상으로 함께한 인원은 4만 명이 넘어가는데요.
기독교계 큰 행사의 강연자로 초청받은 앤 라이체마는, 본인이 남수단 구호 현장에서 직접 겪었던 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가슴 떨리는 위기 상황과, 메데어가 그 길의 끝에서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새 길을 만들어 나갔는지 나누었습니다.

사진 출처 = 다니엘기도회
길의 끝, 그 첫 번째 이야기
종족 간 충돌의 현장
첫 번째 사건은 남수단으로 피난 온 난민들을 위한 메데어의 긴급구호 사업 중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난민들은 전쟁을 피해 남수단으로 도망 왔지만, 남수단에서 발생한 또 다른 내전으로 깊은 절망에 빠지고 말았죠. 이에 메데어는 35명의 팀을 꾸려 그곳 난민촌의 4만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의료, 식수, 영양 사업 등을 진행했습니다. 메데어가 24시간 운영하던 세 개의 큰 병원에서 수많은 난민이 치료받고, 신생아가 태어났으며,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현지의 두 종족이 힘을 합쳐 다른 한 종족을 공격하고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와 집을 들이닥치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살해했습니다. 메데어의 팀 내에도 타겟이 된 종족 출신의 직원이 세 명 있었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두 명은 이미 의도치 않게 다른 지역으로 떠난 상황이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직원은 해당 종족 특유의 표식인 얼굴 흉터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옅은 사람이었습니다.

남수단 메데어 베이스캠프
적군의 손에 맡겨진 목숨
그러나 절대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길 건너편의 타 구호 기관에서는 타겟 종족 직원들이 색출되어 그 자리에서 모두 사살되었다는 소식과, 구조 요청을 받고 출동한 유엔 평화유지군이 길도 없는 흙투성이 구간에 갇혀 메데어가 있는 깊고 외진 지역까지 접근이 힘들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때, 메데어 베이스캠프 앞으로 낯선 차 한 대가 들어섰습니다. 차 안에는 살상을 저지른 종족 출신의 관료가 타고 있었으며, 표적이 된 메데어의 직원을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남수단 국가 총괄 디렉터였던 앤 대표는 그 관료를 믿을 만한 어떠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그 말을 따라도 될 것 같다는 순간적인 직감에 따라 위험에 빠진 직원에게 의사를 물었고, 직원의 동의 하에 그를 관료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 결과, 해당 직원은 공항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도착한 공항에서도 또 한 번 죽음의 고비가 있었지만, 그 당시 같이 공항에 있었던 메데어 동료인 매리의 도움으로 해당 직원은 본인의 이름을 숨기고 “매리”라는 이름으로 비행기에 탑승하여 마침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 일이 있고 3년 반이 지났을 때, 메데어가 이 지역에서 긴급구호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기념하는 축하 행사가 열렸습니다. 유엔과 타 구호 기관, 정부 인사, 그리고 메데어 직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죠. 많은 사람의 연설이 오고 가는 중에 3년 반 전 메데어를 도와주었던 그 관료가 강단에 올라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3년 반 전에, 나는 메데어를 위해 무언가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이제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그 당시 메데어의 팀 리더였던 소피아를 항상 무례하게 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피아는 저와 제 동료들을 항상 변함없이 존중했고, 배려했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그 일을 한 이유입니다.”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그 직원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돈과 인맥, 물리적인 힘이 아닌, 메데어가 평상시에 수혜자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존중과 사랑, 그리고 신뢰였습니다. 길의 끝에 선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그 모습이 도리어 메데어가 길의 끝에 서 있을 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길의 끝, 그 두 번째 이야기
헬리콥터가 착륙하는 사이
2015년 5월, 메데어가 일하던 남수단의 한 마을이 또 한 번 무장 세력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앤 대표는 유엔 고위 관계자와 외교부 대사와 함께 구호 기관 대표로 그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헬리콥터가 마을에 착륙하기 5분 전만 해도 활주로에서 기다리고 있던 메데어 팀이, 막상 착륙하고 나니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방이 섬뜩하리만치 고요한 가운데 갑자기 들리는 총성과 탱크 소리. 알고 보니 공격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곧이어 앤 대표를 포함한 팀은 흥분과 광기에 사로잡힌 무장 세력에게 포위당했습니다. 몇 시간의 살 떨리는 협상 끝에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지만, 활주로에서 본인을 기다리던 직원들이 공격당해 잘못된 줄 알았던 앤 대표는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헬리콥터를 타고 간신히 빠져나오는 그녀의 눈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도망치며 살해당하는 끔찍한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다행히 며칠 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메데어 직원들이 헬리콥터가 착륙하기 직전, 총성을 듣고 자리를 피했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오랫동안 앤 대표를 괴롭게 했습니다.

피하고 싶은 사령관과의 만남
그로부터 8개월 후, 앤 대표는 다시 그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접근권을 얻기 위해 한 총사령관과 협상해야 했습니다. 그 총사령관은 다름 아닌 8개월 전 그날, 마을을 공격하던 무장 세력의 장이었습니다. 총사령관을 만나기 전 그녀는 몹시 두렵고 떨렸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메데어 팀이 얼마나 그 마을의 아이들과 여성들을 돕기 원하는지 전달했습니다. 그녀는 분노와 경멸이 아닌, 겸손과 사랑으로 협상에 임했습니다. 그 결과, 총사령관은 메데어 팀이 그 지역을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허락해 주었고, 메데어는 내전의 최전선을 넘나들며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치료하고, 피난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길의 끝 그곳이 길이 될 때까지
사람들의 관심이 닿지 않는, 모든 길이 끝난 것 같은 그곳에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은, 때로는 동료 직원의 목숨이 위험에 빠지거나, 끔찍한 공격과 살해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메데어가 이 모든 것을 감내하는 이유는, 길이 끝나는 그곳에, 삶의 끝에 선 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위해 메데어는 전 세계 분쟁과 재난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지역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과 존중, 진심으로 대할 때,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을 목격합니다.

앤 대표는 한국 청중에게 당부의 말을 끝으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가장 어려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메데어지만,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여러분, 부디 이 일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깊은 절망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어주세요. 사랑과 회복의 조각을 모아 평화를 이루는 일에 힘써주세요. 감사합니다.”

글. 이정은
[문의]: 메데어 코리아 korea@medair.org
긴급구호 후원하기
2023년 11월 13일, 메데어 대표 앤 라이체마가 다니엘기도회에 참석하여 수만 명의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통역으로는 메데어 코리아의 배고은 사무국장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날, 앤 대표의 강연을 듣기 위해 현장에는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으며, 실시간 영상으로 함께한 인원은 4만 명이 넘어가는데요.
기독교계 큰 행사의 강연자로 초청받은 앤 라이체마는, 본인이 남수단 구호 현장에서 직접 겪었던 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가슴 떨리는 위기 상황과, 메데어가 그 길의 끝에서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새 길을 만들어 나갔는지 나누었습니다.
사진 출처 = 다니엘기도회
길의 끝, 그 첫 번째 이야기
종족 간 충돌의 현장
첫 번째 사건은 남수단으로 피난 온 난민들을 위한 메데어의 긴급구호 사업 중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난민들은 전쟁을 피해 남수단으로 도망 왔지만, 남수단에서 발생한 또 다른 내전으로 깊은 절망에 빠지고 말았죠. 이에 메데어는 35명의 팀을 꾸려 그곳 난민촌의 4만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의료, 식수, 영양 사업 등을 진행했습니다. 메데어가 24시간 운영하던 세 개의 큰 병원에서 수많은 난민이 치료받고, 신생아가 태어났으며,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현지의 두 종족이 힘을 합쳐 다른 한 종족을 공격하고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와 집을 들이닥치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살해했습니다. 메데어의 팀 내에도 타겟이 된 종족 출신의 직원이 세 명 있었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두 명은 이미 의도치 않게 다른 지역으로 떠난 상황이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직원은 해당 종족 특유의 표식인 얼굴 흉터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옅은 사람이었습니다.
남수단 메데어 베이스캠프
적군의 손에 맡겨진 목숨
그러나 절대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길 건너편의 타 구호 기관에서는 타겟 종족 직원들이 색출되어 그 자리에서 모두 사살되었다는 소식과, 구조 요청을 받고 출동한 유엔 평화유지군이 길도 없는 흙투성이 구간에 갇혀 메데어가 있는 깊고 외진 지역까지 접근이 힘들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때, 메데어 베이스캠프 앞으로 낯선 차 한 대가 들어섰습니다. 차 안에는 살상을 저지른 종족 출신의 관료가 타고 있었으며, 표적이 된 메데어의 직원을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남수단 국가 총괄 디렉터였던 앤 대표는 그 관료를 믿을 만한 어떠한 증거가 없었음에도, 그 말을 따라도 될 것 같다는 순간적인 직감에 따라 위험에 빠진 직원에게 의사를 물었고, 직원의 동의 하에 그를 관료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 결과, 해당 직원은 공항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도착한 공항에서도 또 한 번 죽음의 고비가 있었지만, 그 당시 같이 공항에 있었던 메데어 동료인 매리의 도움으로 해당 직원은 본인의 이름을 숨기고 “매리”라는 이름으로 비행기에 탑승하여 마침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 일이 있고 3년 반이 지났을 때, 메데어가 이 지역에서 긴급구호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을 기념하는 축하 행사가 열렸습니다. 유엔과 타 구호 기관, 정부 인사, 그리고 메데어 직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죠. 많은 사람의 연설이 오고 가는 중에 3년 반 전 메데어를 도와주었던 그 관료가 강단에 올라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3년 반 전에, 나는 메데어를 위해 무언가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이제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그 당시 메데어의 팀 리더였던 소피아를 항상 무례하게 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피아는 저와 제 동료들을 항상 변함없이 존중했고, 배려했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그 일을 한 이유입니다.”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그 직원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돈과 인맥, 물리적인 힘이 아닌, 메데어가 평상시에 수혜자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존중과 사랑, 그리고 신뢰였습니다. 길의 끝에 선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진심을 다하는 그 모습이 도리어 메데어가 길의 끝에 서 있을 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길의 끝, 그 두 번째 이야기
헬리콥터가 착륙하는 사이
2015년 5월, 메데어가 일하던 남수단의 한 마을이 또 한 번 무장 세력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앤 대표는 유엔 고위 관계자와 외교부 대사와 함께 구호 기관 대표로 그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헬리콥터가 마을에 착륙하기 5분 전만 해도 활주로에서 기다리고 있던 메데어 팀이, 막상 착륙하고 나니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방이 섬뜩하리만치 고요한 가운데 갑자기 들리는 총성과 탱크 소리. 알고 보니 공격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곧이어 앤 대표를 포함한 팀은 흥분과 광기에 사로잡힌 무장 세력에게 포위당했습니다. 몇 시간의 살 떨리는 협상 끝에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지만, 활주로에서 본인을 기다리던 직원들이 공격당해 잘못된 줄 알았던 앤 대표는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헬리콥터를 타고 간신히 빠져나오는 그녀의 눈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도망치며 살해당하는 끔찍한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다행히 며칠 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메데어 직원들이 헬리콥터가 착륙하기 직전, 총성을 듣고 자리를 피했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오랫동안 앤 대표를 괴롭게 했습니다.
피하고 싶은 사령관과의 만남
그로부터 8개월 후, 앤 대표는 다시 그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접근권을 얻기 위해 한 총사령관과 협상해야 했습니다. 그 총사령관은 다름 아닌 8개월 전 그날, 마을을 공격하던 무장 세력의 장이었습니다. 총사령관을 만나기 전 그녀는 몹시 두렵고 떨렸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메데어 팀이 얼마나 그 마을의 아이들과 여성들을 돕기 원하는지 전달했습니다. 그녀는 분노와 경멸이 아닌, 겸손과 사랑으로 협상에 임했습니다. 그 결과, 총사령관은 메데어 팀이 그 지역을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허락해 주었고, 메데어는 내전의 최전선을 넘나들며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치료하고, 피난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길의 끝 그곳이 길이 될 때까지
사람들의 관심이 닿지 않는, 모든 길이 끝난 것 같은 그곳에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은, 때로는 동료 직원의 목숨이 위험에 빠지거나, 끔찍한 공격과 살해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메데어가 이 모든 것을 감내하는 이유는, 길이 끝나는 그곳에, 삶의 끝에 선 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위해 메데어는 전 세계 분쟁과 재난 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지역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랑과 존중, 진심으로 대할 때,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을 목격합니다.
앤 대표는 한국 청중에게 당부의 말을 끝으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가장 어려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메데어지만,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여러분, 부디 이 일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깊은 절망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마음을 내어주세요. 사랑과 회복의 조각을 모아 평화를 이루는 일에 힘써주세요. 감사합니다.”
글.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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